차별 없는 원칙과 네트워크 콘텐츠 기업과 인터넷 사업자의 힘겨루기

 출출해서 찾게 되었어. 가장 맛있어 보이는 버거를 주문하겠습니다. 양손에 버거를 쥐고 한입 가득히 먹는다는 상상을 하며 참을 수 없는 기다림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나갈 시간이 됐는데 어쩐 일인지 늦네요. 평상시 같으면 진작에 나왔을 시간인데 이상하네요. 저 사람은 저보다 늦게 주문한 것 같은데 먼저 받아 가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것 같아서 점원에게 물어봤어요. 그러자 더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늦게 왔지만 먼저 받아간 그 사람, 알고 보니 더 많은 돈을 지불했다는 걸 알았어요. 햄버거 전문점의 주문 시스템이 갑자기 바뀐 거죠. 원래 가격보다 더 내면 그것보다 더 빨리 나오고 거기에 더 얹어 주면 가장 빠른 속도로 버거를 받을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가격옆에보면MBPS'라는단어도표시되어있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Making Burgers Per Second', 즉 1초에 만들어지는 햄버거 개수를 수치화한 단위입니다. 가장 낮은 가격은 Slow MBPS이고 가장 높은 가격은 Hyper Fast MBPS라고 적혀 있습니다 결국 빨리 받고 싶으면 더 내고, 없으면 그냥 기다리라는 거죠.


<와퍼 중립성> 광고 씬 (출처:Burger King)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생각하면 정상입니다. 위에서 말한 상황은 현실에는 없는 광고 속의 이야기입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에서 만들어진 이 광고의 제목은 와퍼 중립성(Whopper Neutrality)입니다. 와퍼는 버거킹의 대표 메뉴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돈을 더 주고 버거를 사먹을 생각이에요? 아니면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고 항의라도 하실 건가요? 어떤걸 선택해도 찝찝하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거예요. 광고 영상을 통해서도 이해하기 힘든 판매 정책에 당황하다가 마침내 화를 내는 고객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럴 생각이라면 오히려 가까운 맥도날드에 방문하고 싶다는 반응이 나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버거킹은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을까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버거로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제는 따로 있습니다. 버거킹은 네트워크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이 깨지면 벌어지는 상황을 광고에 담아 보여주려 했습니다. 버거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일이 인터넷 서비스 업계에서는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망 중립성을 폐지한 미국 정부를 꼬집으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출처: The Street) 망중립성이 뭐냐고요?이제 알아야 할 게 하나 생겼어요. '네트워크 중립성' 여기서 망은 통신망을 뜻합니다 중립성은 한쪽 편을 들지 않는 공평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개념입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 교수 팀 우(Tim Woo)가 2003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어떤 종류의 콘텐츠든 똑같이 취급받아야 하고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인터넷망의공공성을이야기하고있어요. 망중립성 원칙을 보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웹 콘텐츠를 고의적으로 차단하거나 속도를 낮추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네트워크 사용료라는 개념도 함께 정리해야 합니다. 그물 중립성 얘기할 때 항상 등장합니다 망사용료는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대가를 의미합니다.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통신사에 인터넷 사용료를 지불하듯이 콘텐츠 사업자에게도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대가를 지불하라고 나타난 것이 네트워크 사용료입니다.
아짓 파이(출처:CNB C)망 중립성은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인터넷망이 전화선과 같은 공공성을 갖는다고 보고 2015년 망 중립성 원칙을 법제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해당 원칙이 도출되기까지 채 2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기조가 바뀌었어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에 아짓 파이(Ajit Pai)를 임명했습니다. 아짓 파이는 그물 중립성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통신망은 공공성을 갖는다고 볼 수 없고 통신사업자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망중립성 원칙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2017년 12월 14일 FCC는 자체 투표를 거쳐 망 중립성 원칙을 공식 폐기했습니다. 미국의 통신사업자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콘텐츠 업체에 망 사용료를 요구해 데이터 전송속도에 차별을 둘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입니다.
시간이 흘러 2021년 미국에서 조바이든 정부가 탄생했습니다. 마치 복선처럼 아짓 파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사임했습니다. 최근 존 바이든 대통령은 망중립성 원칙을 바꾸라는 명령을 내렸다. 앞서 소개한 네트워크 중립성 전문가팀의 우도 바이든 정부 국가경제위원회(NEC)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사업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SK브로드밴드와 인터넷 프릭스는 왜 싸우는 걸까.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터넷망에 트래픽이 몰리면 통신사가 인터넷을 중단시키기도 했습니다. 망중립성의 개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전이었습니다. 이후 그물 중립성에 대한 관심은 전보다 커졌어요.
기업과 기업이 대립하는 상황도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SK브로드밴드인 이유가 있어요.
먼저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 사이가 좋아요. 넷플릭스와 공식 제휴를 맺었거든요. LG유플러스는 네트워크 사용료 부담을 덜어주었고 넷플릭스의 도움을 받아 영향력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콘텐츠 사업자가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KT도 지난해 7월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습니다. LG유플러스보다 좋은 조건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남은 건 SK브로드밴드네요 코로나19대유행으로온라인영상스트리밍서비스이용은크게늘었습니다. 인터넷망의 트래픽이 늘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고화질 영상이 많아진 것도 감안하셔야 돼요. 통신사업자에게는 망 관리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콘텐츠 사업자들은 가입자가 늘어나 사업이 번창하고 돈도 벌게 돼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미국과 유럽에서 망 사용료를 내는데 한국에서는 안 그러는 것도 좋지 않았던 거죠.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를 요구했지만 넷플릭스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19년 11월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료 협상을 중재해 달라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신청을 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방통위의 중재를 거부했어요. 그 대신 네트워크 사용료를 지불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가 이용자에게 비용을 받는 상황에서 망 사용료까지 받으려는 것은 이중과금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는 무임승차로 인터넷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에 법원 판결이 났어요. 올해 6월 25일 법원은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협상의무 부존재 확인 부분은 각하하고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덧붙여 "계약 체결 여부와 어떤 대가를 지불할지는 당사자들의 협상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전했다. 네트워크 사용료로 지불해야 한다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었어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협상을 해보라는 뜻이죠.
결국 넷플릭스는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결정했습니다. 법적인 공방은 2회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중립성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서로 엇갈립니다. SK브로드밴드는 네트워크의 중립성은 데이터 차별을 금지하며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반면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망중립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법의 탄생 =국회에서도 인터넷 사용료가 논란이 되면서 인터넷 사용료를 둘러싸고 콘텐츠 사업자를 규제하는 이른바 넷플릭스법을 발의했습니다. 작년 12월 10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법이 적용되는 기준은 있어요. '전년도 말 3개월간 하루 평균 국내 이용자수 100만명 이상, 전국 내 트래픽 1% 이상'이라는 기준에 들어가는 부가 통신 사업자가 대상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기업은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컨텐츠 웨이브, 넷플릭스입니다. 총 6곳입니다.
넷플릭스법의 취지는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 규제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국내 기업을 옥죄는 바람에 역차별 논란을 빚었습니다. 해외 기업에 망 사용료를 부과할 근거가 충분치 않아 국내 기업만 망 사용료를 충실히 낼 뿐이었습니다. 연간 망 사용료로 네이버는 약 700억원, 카카오는 약 300억원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품질유지의무까지지켜야하기때문에이중부담이다라는민원이나왔습니다. 국내 인터넷망은 해외 사업자들이 더 많이 쓰고 있는데 비용 부담은 국내 사업자들이 부담하는 셈입니다.
넷플릭스법에서 내건 「국내 트래픽이 1%이상이라고 하는 기준도 부당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국내 트래픽 점유율 25.9%로 1위를 차지한 구글이나 4.8%로 2위인 넷플릭스와는 달리 간신히 1%를 넘어선 네이버(1.8%) 카카오(1.4%) 콘텐츠 웨이브(1.18%)를 넣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사용료 분쟁, 소비자가 웃는 결과는 없다=네트워크 사용료로 기업이 다투는 것에는 별 영향이 없을 수 있습니다. 금방 피해가 나는건 아니거든요. 근데 곧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망 사용료 분쟁이 끝나면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콘텐츠 공급자가 네트워크 사용료를 지불하면 이용료를 인상할 것이 뻔합니다. 반대로, 통신 사업자가 네트워크 사용료를 받을 수 없게 되면, 인터넷 사용료의 인상으로 연결됩니다. 이렇게 되든 이렇게 되든 소비자에게 피해가 간다 라는 소리가 그래서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방향은?연말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당초, 발매 시기는 가을이었습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사용료 분쟁이 판매 연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최악은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진출을 재고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손익을 따져보겠습니다. 예정대로 발매를 진행하면 국내 통신사업자와 제휴하여 서비스를 시작하게 될 전망입니다. 협상에서는 네트워크 사용료가 중요하게 취급될 겁니다.
결국 콘텐츠 사업자는 통신사업자에게 네트워크 사용료를 지불하고 서비스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구글과 페이스 북도 통신 사업자와 협상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대신 소비자는 통신사업자가 망 사용료를 받게 되므로 콘텐츠 제공 시 문제가 발생하면 이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기업은 이에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나유권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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